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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으로의 산책/독서일기

2. 개인주의자 선언-만국의 개인주의자여, 싫은 건 싫다고 말하라

by lucky-yu 2018. 7. 17.

이 책을 처음 접했던 건 팟캐스트 김도연의 책읽는 다락방을 통해서였다. 처음 이 책의 서문을 듣는 순간 속이 다 뻥 뚫리는 희열같은 것을 느꼈다. 내가 느끼는 답답함을 저자도 느끼고 있구나, 나는 그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한채 마냥 답답하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자는 그 원인을 전근대적인 집단주의 문화에서 찾고있었다. 맞아..진짜 그런가 같아! 라고 생각하며 읽는 내내 저자의 통찰력과 사고력에 감탄했다.

이 책에는 공감하는 내용도 너무 많고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필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좋은 글귀들이 많았다.

<만국의 개인주의자여, 싫은 건 싫다고 말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가끔 대나무숲에라도 가서 마음속 구석에 쌓인 외침을 토해내고 싶을 떄가 있다. 이놈의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려면 견뎌야 하는 것들이 지긋지긋하게 싫다고 말이다. 눈치와 체면과 모양새와 뒷담화와 공격적 열등감과 멸사봉공과 윗분 모시기와 위계질서와 관행과 관료주의와 패거리 정서와 조폭식 의리와 장유유서와 일사불란함과 지역주의와 상명하복과 강요된 겸손 제스처와 모난 동 정 맞기와 다구리와 폭탄주와 용비어천가와 촌스러움과 기타 등등 기타등등. (p09)

직장생활 7여년.. 어느새 7년이나 직장생활이라는 것을 했구나. 첫 직장에서 윗글에서 언급한 모든 것들 때문에 너무나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눈치, 체면, 모양새, 뒷담화, 공격적 열등감, 멸사봉공, 윗분 모시기, 위계질서, 관행, 관료주의, 패거리 정치, 강요된 겸손 제스처, 모난 돌 정 맞기, 다구리, 폭탄주, 용비어천가 등등.. 이 모든 것들에서 자유로웠던 대학생에서 "직장인" 신분으로 탈바꿈하던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끔찍하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이 모든 것들에 익숙해지고 능숙해졌다.(그러나 회식자리, 이부장의 "이사님 사랑합니다!!" 라며 이사가 되고싶어하는 직장상사에게 바치는 용비어천가는 아직도 힘들다..) 익숙해진만큼 나는 '꼰대'가 되어가는 걸까. 신입직원의 생기발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위계질서에서 자유롭고, 강요된 겸손 제스처가 없는 모습에 희열을 느꼈지만, 6개월이 지난 지금, 그는 놀랍도록 "직장인"이 되었다. 다들 그런 것이겠지, 수직적 문화가 확고한 한국사회에서 모난 돌이 되어 정 맞지 않으려면 이렇게 살아야하는 것이겠지 하고 위안해본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내 생각일 뿐 다른 별에서 온 사람들에게 강요할 수 있는 것이 못 된다. 그저 저 별에서 저런 과정을 거쳐 자란 인간들은 저렇게 생각하는 구나 하는 것을 서로 알게 될 뿐이다......(중략) '다름'은 불편하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가능한 한 참아주는 것, 그것이 톨레랑스다. 차이에 대한 용인이다.(p10)

"네 능력은 뛰어난 것에 있는게 아니다. 쉬지 않고 가는데 있어"라고 격려해주면서도, 끝에는 "그러니 얼마나 힘이 들겠어"라며 알아주는 마음, 우리 서로에게 이것이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p14)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무의식적으로 나와 다른 것들에 불편함을 느낀다. 당장 눈에 보이는 행동양식, 말투, 옷차림 등. 직장동료와 티타임을 가질 때 종종 나와 다른 타인에 대한 이야기가 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 사람은 왜 그런대 도대체?" 나 스스로를 다그치고 억누른다. 톨레랑스를 떠올리며 서로 다르게 자라온 인간이니 나와 다른게 당연하며, 다른게 불편하다 한들 나에게 피해를 끼친 것도 아닌데 나에게 다른 사람에 대해 평가하고 비난할 권리가 있는가? 하고 말이다. 다들 이 어렵고 힘든 세상을 묵묵 살아가고 있는데 도움은 못줄 망정 나의 철없음으로 서로를 힘들게 하지 말자 하고 말이다.

집단 내에서의 서열, 타인과의 비교가 행복의 기준인 사회에서는 개인은 분수를 지킬 줄 아는 노예가 되어야 비로소 행복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사다리 위로 한칸이라도 더 올라가려고 아등바등 매달려 있다가 때가 되면 무덤으로 떨어질 뿐이다.(p22)

나는 감히 우리 스스로를 더 불행하게 만드는 굴레가 전근대적인 집단주의 문화이고,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근대적 의미의 합리적 개인주의라고 생각한다.(p23)

어른이 되어서 비로소 깨달았다. 가정이든 학교든 직장이든 우리 사회는 기본적으로 군대를 모델로 조직되어 있다는 것을. 상명하복, 집단 우선이 강조되는 분위기 속에서 개인의 의사, 감정, 취향은 너무나 쉽게 무시되곤 했다. (p24)

얼마전 직업군인에서 내가 근무하는 회사로 이직을 한 직원과 점심을 함께 했다. 그는 본인이 태양의 후예의 송중기와 같은 직위였다며 농담을 하였다. "그럼 헬기도 타시나요?" 라는 나의 물음에 "절대 타지 못애요, 타더라도 사용료를 내야해요." 현실과 이상의 괴리. 그런 그가 군대를 나온 해방감에 군대에 관한 모든 것을 잊고 지내고 있었는데 우리 회사로 이직하면서 다시금 군대에서의 일상을 떠올린다고 한다. 여기가 군대와 똑같다며.

 이 복잡하고 급변하는 다층적 갈등구조의 현대 사회에서는 특정 집단이 당신을 영원히 보호해주지 않는다. 다양한 이해관계에 따라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전략적으로 연대하고 타협해야 한다. 그 주체는 바로 당신, 개인이다. 개인이 먼저 주체로 서야 타인과의 경계를 인식하여 이를 존중할 수 있고, 책임질 한계가 명확해지며, 집단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에게 최선인 전략을 사고할 수 있다.(p25)

특정 집단이 나를 영원히 보호해줘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고 본다. 주체적인 한 개인이 특정 집단이 추구하는 목표를 위해 역할을 할 뿐이다. 개인=집단의 논리가 집단의 뒤에 숨은 개인을 양산한다고 생각한다. 집단은 각자의 역할을 하는 개인의 집합일 뿐이다.

유독 우리를 더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앞서 얘기한 집단주의 문화, 그리고 그것에게 비롯한 수직적 가치관이라고 생각한다. 수직적 가치관이란 사회 구성원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획일화되어 있고, 한 줄로 서열화되어 있다는 뜻이다. 학벌, 직장, 직위, 사는 동네, 차종, 애들 성적... 삶의 거의 모든 국면에서 남들 눈에 띄는 외관적 지표로 일렬 줄 세우기를 하는 수직적 가치관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완전히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논리상 한 명도 있을 수 없다. 모두가 상대적 박탈감과 초조함, 낙오데 대한 공포 속에 사는 사회다.(p29)

타인과의 비교에 대한 집착이 무한경쟁을 낳는다. 잘나가는 집단의 일원이 되어야 비로소 안도하지만 그다음부터는 탈락의 공포에 시달린다. 결국 자존감 결핍으로 인한 집단 의존증은 집단의 뒤에 숨은 무책임한 이기주의와 쉽게 결합한다. 한 개인으로는 위축되어 있으면서도 익명의 가면을 쓰면 뻔뻔스러워지고 무리를 지으면 잔혹해진다. 고도성장기의 신화가 끝난 저성장시대, 강자와 약자의 격차는 넘을 수 없게 크고, 약자는 위는 넘볼 수 없으니 어떻게든 무리를 지어 더 약한 자와 구분하려든다. 가진 것은 이 나라 국적뿐인 이들이 이주민들을 멸시하고, 성기 하나가 마지막 자존심인 남성들이 여성을 증오한다.(_37)

이제 40개월을 갓 넘긴 딸이 어린이집에 다녀온 후 말한다. "내가 사탕을 먹고 있으면 친구들이 부러워하겠지?" "내 장난감을 어린이집으로 가져가면 친구들이 부러워 하겠지?"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의 우위를 확인하려고 하는 것은 본능인 것일까? "사탕을 먹고있으면 친구들이 부러워하겠지. 맛있는 걸 윤하가 혼자 먹고있으니까. 친구들도 먹고싶어 하니까 사탕도 나눠먹어야지." 그러면서 덧붙인다. "윤하야,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것을 바라지 말고, 윤하도 누군가를 부러워할 필요가 없어. 그냥 윤하가 하고싶은 거, 좋아하는 거 하면서 재밌으면 되는 거야"라고. 나름대로 딸에게 수직적 가치관을 심어주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이러다가 학습에 필요한 최소한의 경쟁심마저 없어지면 어떻하지 하고 걱정한다. 어쩔 수 없는 대한민국 엄마인걸까.

한편 합리적 개인주의 공동체에 대한 배려, 사회적 연대와 공존한다. 자신의 자유를 존중받으려면 타인의 자유도 존중해야하기 때문이다. 톨레랑스, 즉 차이에 대한 용인, 소수자 보호, 다양성의 존중은 보다 많은 개인들이 주눅들지 않고 행복할 수 있게 하는 힘이다.(_37)

인간 행복의 원천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인데 집단주의 문화가 왜 사람들을 불행하게 하는지에 대해 서교수는 이렇게 답한다. 원래 행복의 원천이어야 할 인간관계가 집단주의사회에서는 그 관계의 속성 때문에 오히려 불행의 원천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감되는 얘기다. 맛있는 음식도 내가 원치 않을 때 강제로 먹으면 배탈이 나듯, 타인과의 관계가 나의 선호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내 의사와 관계없이 강요되고, 의무와 복종의 위계로 짜이는데 이것이 행복의 원천이 될 리 없다. 갑을관계, 경쟁관계, 상명하복관계, 나를 평가하고 지배하는 관계, 내가 일방적으로 순종하고 모셔야 하는 관계이 있는 인간들이 과연 나에게 유용한 생존의 도구이기는 할까? 생존의 위협에 가깝지 않을까?(_57)

회사라는 조직내에서의 수직적인 관계는 필연적이라고 생각한다. 유시민 작가는 "글쓰는 방법"에서 조직에서 수직적인 관계가 필요하지만 그것은 한 개인의 역할이 수직적인 상하관계에 있는 것이지 그 수직적인 역할을 하는 모든 개인은 존엄하다고 했다. 공감되는 이야기다. 개인은 특정 역할을 수행하는 집단의 구성원일 뿐 집단이 되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개인이 수직적인 집단에 동화되는 순간, 수직선상 하부 어딘가에 있는 내 역할이 나 자신이 되어버린다. 사무실에서는 내 역할의 위치를 파악하고 상명하복관계에 나를 맞추되, 퇴근 후에는 존엄한 한 개인으로 돌아온다. 어쩌면 나의 존엄성을 회복하고 싶기 때문에 다들 "빠퇴"을 갈망하는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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