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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으로의 산책/독서일기

5.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by lucky-yu 2018. 9. 7.

한달 전쯤 집에서 우연히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사실 나와 남편이 다니는 직장은 책에 굉장히 관대한 곳이라서 이런저런 이유로 받아놓은 책이 꽤 된다. 생각해보니 우리 서재에 꽂힌 책의 대부분은 받은 책인 것 같다. 갑자기 반성된다. 회사가 직원들의 지적 수준 향상을 위해 애쓴 것에 비해 나와 신랑의 독서량은 형편없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한 권씩 섭렵해나가는 것으로 직장에 대한 예의?를 갖추려 한다. 그 시작이 바로 유시민의 글쓰기특강.

유시민 작가님이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 토론, 강연 등을 봐왔기 때문에 이 책을 읽을 때는 작가님이 화면에서 강의하는 듯한 친근한 느낌을 받았다. 말을 그대로 책으로 옮겨놓은 것처럼 술술 읽힌다. 학식이 높은 사람이 이렇게 쉽게 읽히는 글을 쓰는 것을 보면서 유 작가님의 철학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첫째, 많이 읽어야 잘 쓸 수 있다. 책을 많이 읽어도 글을 잘 쓰지 못할 수는 있다. 그러나 많이 읽지 않고도 잘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둘째, 많이 쓸수록 더 잘쓰게 된다. 축구나 수영이 그런 것처럼 글도 근육이 있어야 쓴다. 글쓰기 근육을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쓰는 것이다. 여기에 예외는 없다. 그래서 '철칙'이다. (p.62)

다독과 다작의 중요성.

 

 '발췌'는 텍스트에서 중요한 부분을 가려 뽑아내는 것이고, '요약'은 텍스트의 핵심을 추리는 작업이다. 발췌는 선택이고 요약은 압축이라 할 수 있다. 발췌가 물리적 작업이라면 요약은 화학적 작업이다. 그런데 어떤 텍스트를 요약하려면 가장 중요한 정보를 담은 부분을 먼저 가려내야 한다. 효과적으로 요약하려면 정확하게 발췌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보면 발췌 요약이라는 말은 요약이라고 줄일 수 있을 것이다. (p 63)

발췌와 요약은 생각보다 어렵다. 독후감을 위해 앞뒤 맥락 상관없이 내가 감명받은 구절,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발췌해서 감상평을 덧붙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한편의 논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핵심 부분만 추려내는 동시에 맥락에 맞게 줄이는 건 정말.. 아 힘들다. 보고서(혹은 논문작성)의 경우는 더하다. 주제에 대한 온갖 정보를 모아 핵심 정보만 추린 다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맞게 요리조리 짜맞추고 나의 의견을 덧붙여 상사(교수님)를 설득해야한다. 돈 벌기(학위 따기) 쉽지 않다.

 

... 그렇지만 전공 세미나에서 발표를 하거나 구두시험을 보는 데 큰 문제는 없었다. 나는 '부러지는' 독일어를 해도 독일 교수와 학생은 '물 흐르듯' 알아들었다. '대외 교역 확대와 학력별 임금격차 심화 현상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지' 여부를 다룬 석사 논문은 그 학기 마인츠 대학교 경제학과 졸업생 중에서 최고점을 받았다. ... 교수들은 논문 주제를 다루는데 적합한 자료를 비판적으로 해석하고 창의적으로 활용했는지 평가했다. 전제에서 결론으로 이르는 추론 과정에 논리적 결함이 없는지 살폈다. 독일어 문장이 얼마나 매끄러운지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나는 한국어로 생각하면서 독일어로 논문을 썼다. 대부분 영어로된 참고 문헌을 읽을 때도 한국어로 생각했다. 세부 주제, 데이터, 논리, 문장까지 모두 한국어로 먼저 생각을 정리한 후에 독일어로 옮겼다. ... 논문을 쓸 때 중요한 것은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문자로 정확하게 옮기는 능력이다. (p 109)

이 부분을 읽으면서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부러지는' 독일어를 구사함에도 불구하고 논문 최고점을 받았다는 신화같은 이야기는 나에게 다시 한번 동기부여가 되었다. 나는 영어 원어민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최대한 원어민스러웠으면 좋겠다는 강박을 갖고있다. 그래야 유학에 성공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학문을 위해서는 언어보다는 논리로 승부를 봐야한다는, 잊고 있었던 아니 확신을 갖지 못했던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어떤 책과 친구가 되려면 한 번 읽고 말 것이 아니라 여러 번 읽어야 한다. 시간이 들지만 손으로 베껴 쓰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그런 책 목록을 제안하기에 앞서 우선 세 권을 소개한다. <토지>와 <자유론> 그리고 <코스모스>이다. 이 책들은 두세 번이 아니라 열번 정도 읽어보기를 권한다.(p 137)

아아 토지.. 수많은 블로거들은 토지는 너무나 감동적이고 몰입도가 높고 심지어 읽으면서 울기까지 했다는데 난 왜 아닐까? 독서 내공 부족이겠지. 

 

자투리 시간 글쓰기의 주제와 내용은 정하기 나름이다. 출근길 버스나 지하철 풍경을 그려도 좋고 단골 카페 인테리어를 묘사해도 괜찮다. 거리에서 진한 스킨십을 하는 젊은 연인을 부러워해도 괸다. '키도 큰' 친구에 대한 시기심을 토로해도 무방하다. 프로이트나 융의 심리학이론에 관한 생각... 뭐가 되었든 많이 쓰면 되는 것이다.(p 229)

지금 이 블로그에 글쓰고 있습니다.(제발 꾸준히 쓸 수 있기를!) 

 

긴 글 보다는 짦은 글쓰기가 어렵다. 짦은 글을 쓰려면 정보와 논리를 압축하는 법을 알아야하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압축 기술을 두 가지다.

첫째, 문장을 되도록 짧고 간단하게 쓴다.

둘째, 군더더기를 없앤다.

문장을 짧게 쓰려면 복문을 피하고 단문을 써야 한다. 여기서 복문은 주술 관계가 둘 이상 있는 모든 형태의 문장이다. ... 글을 압축하려면 단문을 기본으로 하고 특별한 경우에 복문을 쓴다는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 뜻과 느낌을 강하고 확실하고 깊게 전하려면 복문을 써야 한다는 판단이 들 때만 복문을 쓰는 것이다.(p 237)

자꾸 길게 쓰고 싶다. 뭐 그리 중언부언할게 많은지.. 짦은 글쓰기는 복숭아 속 씨앗 찾기와 비슷한 것 같다.(아기 엄마이다보니 이런 예들 밖에 생각이 안난다. 망고 속 씨앗 찾기 같은. 딸내미가 좋아하는 과일의 씨앗 찾기.) 껍질도 까버리고, 열매 부분도 먹어 없애버려야 진정한 씨앗이 나타난다. 과일 입장에서는 씨앗이 가장 중요한 물질이자 정보이니 합당한 비유라고 위안해본다.

 

문장의 군더더기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접속사(문장부사), 둘째는 관형사와 부사, 셋째는 여러 단어로 이루어져 있지만 관형어나 부사어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문장 성분이다. ... 문장 사이에 매번 '그러나' '그리고' '그러므로' '그런데' '그렇지만' 같은 접속사를 넣는 것을 나쁜 습관이다. 문장은 뜻을 담고 있다. 그 뜻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면 접속사가 없어도 된다. (p 237)

내가 나쁜 습관을 가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가끔씩 보고서의 일부분을 맡아서 작성할 때가 있는데 종종 그러나, 그러므로 같은 접속사를 사용했었다. 이런 접속사의 사용이 의미를 더 명확하게 해준다고 믿었었는데 이것들은 결국 "군더더기"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