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삶이 아름답고 행복할 수 없다는 게 아니다. 평범해도, 평범하지 않아도, 인생은 훌륭하거나 비천할 수 있다. 인생의 품격은 평범함이나 비범함과 상관없는 것이다. 내 문제는 꿈이 없다는 것이었다. 내게는 무엇인가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없었다. 인생을 어떤 색조로 꾸미고 싶다는 소망도 없었다. 그저 현실에 잘 적응했을 뿐이다. (_33)
왜 자살하지 않느냐고 카뮈는 물었다. 그냥 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는 이유를 찾으라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삶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오늘 하루 그 의미를 충족하는 삶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오늘 하루 그 의미를 충족하는 삶을 살았는지 판단해야 한다. 정답은 없다. ... 삶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중요한 건 나름의 답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는 삶은 훌륭할 수 없다. 아무리 많은 돈과 큰 권력을 가지고 있어도,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라고 해도, 의미를 모르는 삶은 비천하고 허무할 뿐이다.(_49)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지만 그 자체를 물려줄 수 없는 행복, 그것은 무엇인가? 행복은 삶에서 기쁨을 느끼고 자기 삶에 만족하여 마음이 흐뭇한 상태를 말한다. 우리는 언제 이런 흐뭇함을 느끼게 되는가? 스스로 설계한 삶을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방식으로 살면서, 그것이 무엇이든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것을 성취했을 때 행복을 느낀다. 부모는 자녀가 자신의 행복을 찾아나갈 수 있도록 지켜보고 격려하면서 필요할 때 적절한 도움을 주는 선에 머물러야 한다.(_213)
칸트의 충고를 기억하자. 행복한 삶을 원한다면 스스로 세운 준칙에 따라 행동하되 그것이 보편적 법칙이 될 수 있도록 하라. 어떤 경우에도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 이름을 남기기 위해 사는 것은 자기 자신을 수단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훌륭하고 행복한 삶이라고 할 수 없다. 훌륭한 인생, 행복한 삶은 죽음 너머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 있다. 겉으로는 이름이 남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남는 것은 그 이름을 떠올리게 만다는, '지금 여기'에서 보낸 삶의 내용이다.(_326)
누군가의 죽음이 애통하게 느껴진다면 그 감정은 죽음 그 자체보다는 기쁨과 공감의 상실에 기인한 것이다. 그 사람이 더 살았다면 맛볼 수 있었을 행복, 그로 인해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이 받았을 기쁨, 그것들이 사라지는 데 따르는 아픔을 표출하는 것이다.(_332)
미국의 유명한 회계법인 KPMG 회장이었던 유진 오켈리(Eugene O'Kelly)는 53세에 죽었다. 그가 뇌암 확진을 받았을 때 남은 시간은 석 달 뿐이었다. 오켈리는 삶의 기억을 공유하는 이들에게 편지와 전화로 작별인사를 했다. 그 수가 1천 명이 넘었다. 가까운 친지들을 초대해 좋은 식당에서 고급 와인을 나누면서 추억거리를 만들었다. 그 90일 동안의 경험과 사색을 책으로 남겼다. 그는 자기의 삶을 충분히 음미하면서 지구 행성을 떠났다.(_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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