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책을 고른 이유는 뭔가 경제학적인 서적을 읽어야하지 않겠나 라는 위기의식에서였다. 지금까지는 책을 고를 때 나의 흥미 위주, 즉 미술, 역사 서적을 중심으로 했다면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경제서적을 꾸준히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이 순수 경제서적으로 분류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내용 자체가 금융관련 이론에 인문적인 요소를 지나치게 작위적으로 끼워맞춘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마치고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라는 책도 보았는데 그 책을 읽고 이 책을 보니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와 비교해도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은 부분이 많았다.(문장이 매끄럽지 않다는 것이 아닌 내용의 금융-인문의 논리적 연결성이 매끄럽지 않았다.)
읽는 내내 불편한 감정이 계속되었지만 어느 정도 그런 작위적임에 익숙해지고 나니 비로소 내용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 책이 경제 관련 서적이 아닌 인문학적 에세이 정도로 생각하고 기대를 내려놓으니 책이 수월하게 읽혔다. 그리고 나에게 유익하고 또 의미있다고 생각되는 내용들을 발견하기까지 했다.
부모는 아이들의 꿈과 잠재력을 뒷받침하는 대리인 시늉을 하지만, 실제로는 대리인으로 삼은 아이들을 자신이 바라는 거푸집 속에 강제로 집어넣으려고 하는 주인이다.(_172)
글쎄..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부분이었다. 내 아이의 꿈과 잠재력을 뒷받침하기 위한 노력이 오히려 아이를 거푸집 속으로 집어넣는 행동을 아니었지는지 말이다. 나를 되돌아보고 항상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민한 직관력을 갖춘 아이들이 집요하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부모와 짝지어졌을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묘사한다. 이런 아이들은 자기 주변의 신호와 필요를 기막히게 잘 알아차린다. 그렇게 하는 것이 역사적으로 그들이 사랑받기 위한 열쇠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꾸로 이 아이들은 그러면서 자신의 욕망과 관심사를 세상에 투영할 능력을 상실한 채 성장한다.(_183)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내 윗세대의 누군가가 생각나서 화가 났다. 나는 그녀가 열등의식, 낮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에게 집요하게 잔소리하고 참견하고 끝끝내 타인의 행동 하나하나를 본인의 뜻대로 바꾸어 놓는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길러진 타인은 희생양이 되어 자신의 욕망과 관심사를 세상에 투영할 능력을 상실한 채 어른이 되었다. 그래서 그녀를 증오했고 혐오했다.
성공한 기업가는 제프 쿤스를 닮아 가야 하는 조지 오웰이다. 여러 가지 착상이 우리 머릿속에서 싹틀 수 있지만, 그 착상으로부터 무슨 사업이나 일을 만들어 내려면 분명 다른 사람들과 서로 의존하는 관계가 수없이 많이 필요한 것이다.(_240)
제프 쿤스는 이런 저런 레버리지를 일으켜서 본인의 예술품의 완성도를 극대화시켰고 조지 오웰은 그 어떤 레버리지도 일으키지 않고 홀로 잠식하며 <1984>를 완성했다. 저자의 말처럼 성공하기 위해서는 제프 쿤스를 닮아 가야 하는 조제 오웰이 되어야 한다는 말에 공감한다. 본인 스스로 만들어낸 컨텐츠가 있어야하지만, 이러한 컨텐츠가 빛을 보려면 여러 사람과의 협업, 도움이 필요하다. 사람은 혼자서 모든걸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내가 직장 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후회하는 일은 책임을 떠안지 않고 회피했던 행동이다. 교육의 기회를 포기했다든가, 사랑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인간관계를 놓쳤다던가, 아이들에게 무관심했던 행동이 주를 이룬다.(_241)
나에겐 이 모든 것들이 "적극적인 삶의 태도"와 연관된다. 취업을 하고, 가정을 이루고, 아이도 기르고 있는 지금의 안정적인 상태에서 추가적으로 무엇을 한다는 것은 나에게 적극성을 요구한다. 내가 적극적이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먼 미래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이기도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을 열심히 살고 무언가를 성취하는 것에 행복감을 느끼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만 레버리지를 적정히 일으킴으로써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못할 상황은 만들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리스크 감수에 따르는 나쁜 결과에 윤리적 실패의 의미를 덧씌우면 리스크를 감수하고자 하는 우리의 의욕을 제한하고 실패에서 배울 수 있는 기회도 상실한다. 우리가 실패했다는 이유로 자기 자신을 처벌한다면, 그것은 채무자를 형틀에 쓰이어 욕보이거나 감옥에 보내는 것과 다름 없다.(_248)
이 부분에서는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실패한 것이 죄는 아니나, 과도한 리스크 감수에 따르는 실패에는 책임을 져야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도덕적 해이와 탐욕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물론 기술력있는 벤처기업에 투자를 하는 등의 위험하지만 될성부른 투자처에 투자를 하는 것은 자본의 효율적 배분 측면에서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무책임한 리스크 테이킹은 주인-대리인 관계에 기반한 도덕적 해이와 과도한 인센티브에 눈이 먼 윤리적 실패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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