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이반 일리치의 죽음
똘스토이의 책을 드디어 완독했다. 대문호 똘스토이의 책을 읽으며 이 책에 무엇이 들어있기에 사람들의 인생작이 되었을까?라는 질문을 계속 했던 것 같다. 책 경력?이 얼마 되지는 않지만 다른 책들과는 다르게 조금 더 무겁다는 생각을 했다.(톨이스토이 플라시보 효과일수도.) 결론부터 말하자면 책 다 덮은 후에는 으앵?이라는 생각이, 책을 읽는 과정에서는 아아.. 라는 탄성이 나왔다. 책은 이반 일리치의 아들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그의 죽음을 진정으로 슬퍼하지 않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생애와 죽음의 과정이 서술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반 일리치와 나의 모습이 혹은 나 주변 사람들이 모습이 놀랍도록 일치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평소 가볍고 유쾌하면서도 예의를 갖추고, 그런 나 자신의 품위있음(있는 것으로 착각함)을 즐긴다. 솔직히 이 책을 절반쯤 읽을 때까지만 해도 톨스토이는 왜 이반 일리치의 그런 인생을 잘못된 것으로 간주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반 일리치가 점점 죽음에 가까워지면서 그의 인생을 성찰하고 반성하는 것으로 의식이 흐르면서 나 역시도 내 인생을 반성하게 되었다.
나는 가족에 불만이 생길 때마다 점점더 일에 집착하고 독서에 집착하고 자기계발에 집착했다. 그런 몰입을 통해서만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무거운 걱정 근심거리와 멀어지려 더욱더 매사를 가볍고 유쾌하게 다루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느낀건, 나의 인생이 너무 나에게만 향해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걱정하지 않고, 제 3자의 입장에서 가볍게 안됐구나... 주위 다른 사람들의 상황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나의 미래에만 침잠한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타인의 죽음은 타인의 것일 뿐, 그것이 나의 것이 되리라는 현실감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타인의 고통은 타인의 것일 뿐, 나의 것은 아니라는 식으로 말이다.
톨스토이가 어떤 심오한 뜻으로 이 책을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나의 외롭지 않은 죽음을 위해서는 주위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고 그들의 고통과 괴로움도 나눌 줄 알아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에서 보면 그동안의 나는 너무나도 내 중심적으로 살아왔다는 것도 말이다.
동료의 사망 소식을 듣고 이드릐 마음속에 떠오른 생각은 그로 인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자리 이동과 보직 변경 등에 대한 것만은 아니었다. 아주 가까운 사람의 사망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누구나 그러듯이 그들도 죽은 게 자신이 아니라 바로 그라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다.(_10)
아내는 첫아이의 출산 때부터 아이가 젖을 물지 않는 일이라든지, 정말인지 거짓말인지 아이와 산모가 조금 아픈 일에 이르기까지 온갖 일에 남편을 끌어들였다. ..... 아내가 신경질적으로 더 집요하게 매달릴수록 이반 일리치는 점점 더 생활의 무게중심을 자신의 직무로 옮겨갔다. 그는 더욱더 일에 빠져들었고 명예욕도 에전보다 훨씬 강해졌다. 아주 일찍부터, 결혼한 지 일년도 되지 못해 이반 일리치는 결혼생활이라는 것이 삶에 편리함을 주는 점이 일부 없지 않지만 본질적으로 아주 복잡하고 힘겨운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따라서 자신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그러니가 사교계에서 인정받는 품위있는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공직에서와 마찬가지로 결혼생활에서는 일정한 원칙을 세워 지켜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_33)
그는 가정생활에서 아내가 해줄 수 있는 것으로 따뜻한 식사와 집안 관리, 잠자리 등 딱 세가지 편의사항만을 기대하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남들이 보기에 겉으로나마 가정의 품격을 잘 지켜가는 것어있다. 그외에 조금이나마 즐겁고 유쾌한 일이 있을 수 있다면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만일 이 세가지에 조금이라도 차질이 있거나 불평이 생기면 그는 그 즉시 자신만의 고립된 일의 세계에 파묻혀 거기서 보람을 찾았다.(_34)
그는 가족과 지내는 시간을 점점 더 줄여나갔고 함께 있어야 할 경우에도 가급적 다른 사람들을 불러 함께 있음으로써 자신을 지키고자 했다. 이반 일리치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일 속에 파묻혀 오직 거기서 재미를 느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 재미라는 것이 그를 삼켜버리고 말았다.(_35)
심지어 그는 어떤 경지에 오른 거장들이 그러듯이 가끔 인간적인 것과 공적인 관계를 뒤섞어 장난치는 여유를 보이기까지 했다. 그가 이렇게 여유를 부리는 것은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다시 공적인 것을 취하고 인간적인 것을 버릴 수 있다는 자심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 집에 돌아오면 아내와 딸은 어딘가로 외출 중이거나 아니면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아들은 김나지움에 다녀와서 과외교사와 수업준비를 하거나 배운 것을 복습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잘 돌아가고 있었다.(_46)
이반 일리치는 소리내어 울고 싶었고 그런 자신을 누군가 다정하게 어루만지며 같이 울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법원 동료인 셰베크 판사가 찾아오자 울며 동정을 구하는 대신 이반 일리치는 심각하고 엄하게 깊은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타성적으로 대법원 판결의 의미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표하고는 자신의 견해를 고집했다. 그 주변의, 그리고 그 자신의 이런 거짓말이 이반 일리치의 생의 마지막 순간들을 해치는 가장 무서운 독이었다.(_85)
그는 다리를 내려놓고 팔을 베고 옆으로 누웠다. 자신이 너무나 불쌍했다. 그는 게라심이 옆방으로 물러나기를 기다렸다가 더이상 참지 못하고 어린애처럼 펑펑 울기 시작했다.(_100)
등받이에 얼굴을 묻고 소파에 누눠 지내는 요즈음 이반 일리치는 고통스럽게 고독을 견디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도시 한복판에서, 많고 많은 친구들과 가깝디가까운 가족들 곁에서 느껴야 하는 고독함, 그것은 그 어디에서도, 바다 저 깊은 바닥에서도, 땅속 깉은 곳에서도 찾을 수 없는 처절한 고독이었다. 이런 고독 속에서 이반 일리치는 그저 과거의 추억만을 떠올리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_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