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그나저나 나는 지금 과도기인 것 같아요.
오히려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텅 빈 것 같은 마음이 조금씩 채워져갔다. 나는 혼자 있어서 외로운 게 아니라 혼자 있지 못해서 외로운 거였다. 어느 철학자가 인간은 방 안에 혼자 있지 못한 데서 불행이 시작되었다고 하더니 딱 나를 두고 하는 말이구나 싶었다._23
우리는 누구나 즐거우보다 퍼즐 조각 같은 고통의 순간순간을 견디며 살아간다. 나만 그런게 아니라는 것만 알아도 조금은 위안이 된다._36
거친 바람 속을 참 오래도 걸었네
긴 꿈이었다면 덧없게도 잊힐까
대답 없는 길을 나 외롭게 걸어 왔네
푸른 잎들 돋고 새들 노래를 하던
뜰에 오색 향기 어여쁜 시간은 지나고
고마웠어요 스쳐간 그 인연들
아름다웠던 추억에 웃으며 인사를 해야지
아직 나에게 시간이 남았다면
이 밤 외로운 술잔을 가득히 채우리
최백호, '길 위에서' _59
나이 든다는 건 어쩌면 어른들의 행동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시작했다는 건지도 모른다. 이 세상은 그 나이가 아니면, 그 상황이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그걸 모르고 뭘 그리 강퍅하게 잘난 체하며 살았는지... _64
손을 움직이면 잡념이 사라진다. 마음은 가슴에만 있는 게 아니라 손에도 있는가 보다._79
박완서 선생님은 마흔 이후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 노년가지 글을 쓰며 사셨다. 일찍 데뷔한 작가들보다 오히려 다양한 경험들이 쌓여서 글쓰기에 더 좋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 딱 좋은 나이란 없다. 사람마다 제각각 다른 속도가 있을 뿐이다. 내 삶의 변화에 맞춰 행동을 옮기는 그 순간, 그 때가 딱 좋은 나이다. 나이를 틀에 맞춰 규정하는 것은 지나간 시대의 유물이다._127
여기가 아닌 다른 어딘가로 떠나봐야 내 자리가 보인다. 나무만 보면 숲이 안보이는 것처럼, 현실 속에 묻혀 있다 보면 눈앞의 것만 보이고 다른 건 보이지 않는다. 떠나보면 내 자리라는 것이 순간순간을 살아내며 얻어낸 소중한 결과임을, 내가 원하던 것이 다른 곳에 있는 게 아니라 내 자리에 이미 존재해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_134
인생이란 게 어떤 틀대로 곧게 가는 건 아니다. 강물처럼 굽이굽이 흘러가다 장애물을 만나 멈추기도 하고, 폭우도 만나면서 둥글둥글 곡선을 그리며 가는 거다. 지금 혹시 해놓은 것도 없이 나이만 먹고 있는 것 같아 불안해도, 지금이 아니면 아무것도 되지 못할 것 같아 우울해도, 인생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_143
나도 젊었을 때는 어느 것 하나 내 마음대로 되는게 없어서 불안하고 또 불안했다. 그 불안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 지 골몰하다 보니 불안은 또 다른 불안을 불러와서 나를 무기력하게 했다. 더구나 무슨 일이든 내 마음대로 돼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불안을 안고 살았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내 삶에 집중하지 못했고 늘 안절부절못했다. 만약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불안에 끌려다니지 않고 지금 당장 집중해서 할 일이 뭔지를 찾아보고 집중할 것 같다. 책도 많이 읽고, 더 열심히 공부도 하고, 연애도 실컷 해보고, 비키니도 맘껏 입어보면서._146
나는 요즘 불안에 대처하는 법을 알았다. 갱년기 증후군까지 겹쳐 더 큰 불안이 찾아오면 '또 왔구나, 그냥 나랑 놀자.'하는 여유를 부리게 된다. 음악을 듣는다거나 책을 보면서 다른 것에 집중하다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고 없다. 불안은 나 좀 예쁘게 봐주세요, 하며 관심 끌고 싶어하는 어린아이와 같다. 관심 두지 않고 내버려 두면 알아서 제 갈 길 간다. 불안에 잠식당하지 않으려면 하루하루에 마음을 집중해서 소소한 행복을 찾아내는 것, 오직 이것뿐이다.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떤 나이든 불안한 건 마찬가지다. 불안 없는 삶이 오히려 더 불안한 건 아닐까._147
몸이 망가져 응급실에 실려가서야 삶이란 100m 달리기가 아니라 천천히 걸어가야 하는 순례길이란 걸 알게 됐다. 힘들면 좀 쉬어 가도 괜찮다고 나에게 좀 더 관대했다면 좋았을 것을._152
행복은 셀프다. 나는 행복은 셀프라는 걸 깨닫고부터 조금 더 행복해진 것 같다. 남이 정해놓은 기준이 아니라 내가 만든 내비게이션을 따라가다 보니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수시로 행복감을 느낀다. 가족이 먹을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장을 보는 시간, 내 작은 몸을 환하게 비춰주는 눈부신 햇살과 바람, 산책길에 만나는 이름 모를 들꽃, 숨이 턱에 닿도록 헐떡거리며 올라간 산 정상에 불어오는 산바람, 기다리지 않았는데 바로 내 앞에 선 662번 버스, 내가 앉는 자리만 오롯이 비어 있는 단골 카페의 구석진 자리..._199
아마도 나는 나에게 맞는 일을 찾지 못해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원하던 일을 찾아 "너 지금 행복하니?", "지금 마음이 어때?" 물어가며 나에게 집중하다 보니 내 가슴은 풍성해졌다. ...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불편한 옷을 입고 힘들어하거나 하이힐을 신고 오리처럼 뒤뚱거리지도 않는다. 남들 눈에 맞춰 힘들게 살다 소중한 내 인생을 그냥 허비하기는 정말 싫으니까._207